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생각] 대통령 신임투표의 가능성

국민투표에는 크게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하는 두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 하나가 국민표결(Referendum)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임투표(Plebiscite)로서 ‘특정인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상의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의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와 헌법 제130조 제2항의 헌법개정에 관한 국민투표의 두가지로 규정되어 있으며, 모두 ‘국민표결(Referendum)’을 의미하는 것이고, 현행 헌법상 ‘신임투표(Plebiscite)’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다수학자의 견해이며 헌법재판소의 태도(2004.05.14,2004헌나1)이다.

노무현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한 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안에 대한 결정’ 즉, 특정한 국가정책이나 법안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본질상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우리 헌법에서 대표자의 선출과 그에 대한 신임은 단지 선거의 형태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부여받은 국민투표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위헌적인 재신임 국민투표를 단지 제안만 하였을 뿐 강행하지는 않았으나,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국민들에게 제안한 것은 그 자체로서 헌법 제72조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을 실현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신임투표를 인정하는 것은 대의제에 기초한 대통령제에 반하는 것이라는 견해와 국민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철회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일반원리에 근거하여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헌법 제72조의 성격이 ‘제한적, 한정적’ 규정인지, ‘예시적, 포괄적’규정인지의 성격규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투표제도도 일종의 제도보장이라고 본다면 이는 ‘최소한의 보장’에 그치는 것이고, ‘최대한의 보장’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동 조항의 성격은 ‘예시적, 포괄적’인 규정이므로 이를 넓게 해석하여 ‘중요정책’에 대통령 자신의 신임까지 결부시켜서 국민의 뜻을 묻는 것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에서 신임투표를 국민투표의 내용에서 배제한 주된 이유는 신임투표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권자의 정당성 확보수단으로 악용된 부정적 경험에 치중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위 결정에서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에게 국민투표의 실시 여부, 시기, 구체적 부의사항, 설문내용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적인 국민투표발의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이 단순히 특정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정책에 대한 추가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등, 국민투표를 정치적 무기화하고 정치적으로 남용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부의권을 부여하는 헌법 제72조는 가능하면 대통령에 의한 국민투표의 정치적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엄격하고 축소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그 배경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정보화사회와 문화국가에서는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소통의 방법으로 유용할 뿐만 아니라, 특히 5년 단임제의 제한이 있는 우리의 경우 제도적 악용의 위험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국민투표의 대상으로 하여 대통령의 신임과 결부시킬 수는 없을 것이지만, ‘사안’에 따라 또는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국민의 의사를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중요정책’이라고 판단되는 사항에 한해서는 스스로의 신임을 연계시키는 것도 현행 제도상으로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