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9일 금요일

[생각] 오바마의 버려진 개를 말하다. 9 - 희망에의 기대

올해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현지 노르웨이 오슬로의 발표회장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 참석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의 언론들도 의외라는 듯한 다소 놀라운 반응들을 전하고 있다.

논의의 과정은 만장일치였으며, 현재까지의 업적보다는 앞으로의 세계평화와 군축, 그리고 핵없는 세상에로의 기여에 대한 기대감의 표시로 분석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듯 하다. 냉전이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국가인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수상자로 결정된 이면의 술렁임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러일 전쟁에서 평화 조약을 이끌어낸 공로로 1906년 수상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국제연맹을 창설한 공로로 1919년 수상한 우드로 윌슨에 이어 세 번째 수상자이며, 비록 짧은 재임기간이긴 하지만 평화를 위해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나든 그의 행보를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올림픽유치와 관련하여 오바마의 발로 뛰는 전방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하면서 다소 위축된 오바마의 입장에서는 금융위기 이후의 여러 가지 정책의 수행과 건강보험개혁 등 국내의 복잡한 여론 동향과 관련하여서는 상당한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미국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기득권수호투쟁 모드에 돌입한 이른바 우파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사회주의라고 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오바마의 가치’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어떤 형식으로든지 힘을 얻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를 쳐서 오히려 수상의 의미를 미리 깎아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벨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 중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에의 희망과 냉전이후 미국중심의 단일패권주의로 향하는 미국의 탐욕의 질주에 어느 정도의 제동장치로서 ‘약간의 전환’에로의 기대심리를 분명히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노르웨이를 포함한 유럽은 리스본 조약을 통하여 대통령직과 임기 5년의 외교대표직을 신설하는 등 EU의 정치 통합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으며, 아일랜드에 이어 폴란드까지 비준에 동의함으로써 현재까지 체코를 제외한 27개국의 비준을 마치게 됨으로써 조만간 거대한 공동체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냉전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금융위기로 인한 단일패권주의에 대한 견제의 요구 등으로 세계는 지금 새로운 가치 질서를 향하여 암중모색 중에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새로운 개발도상국의 입지가 강화되고,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헤게모니에서 유럽의 입지를 위한 간접적인 호의의 포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모든 이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미국내에서의 좀 더 ‘사람사는 세상’을 향한 ‘오바마의 가치’를 존중하며, 그의 개혁 조치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비록 반대에 부닥쳐서 약간의 왜곡이 있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빛바램없이 ‘담대한 진보’가 ‘세계의 희망’이라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이므로 철저히 ‘미국의 가치’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 머물 것이며, ‘미국의 가치’가 ‘거대한 전환’을 가져온다 한들 우리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평화와 연대’에의 쉼없는 행진은 굴절없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